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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황제의 궁전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도시, 스플리트


플리트비체의 숲과 폭포를 뒤로하고 아드리아해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크로아티아의 풍경은 다시 달라집니다.

짙푸른 바다와 야자수가 이어지고, 오래된 석조 건축물 사이로 사람들의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그곳이 바로 스플리트(Split)​입니다.

스플리트는 과거의 유적을 조용히 보존해 놓은 도시가 아닙니다.

고대 로마 황제가 머물던 궁전 안에서 사람들이 집을 짓고, 식당을 열고, 빨래를 널며 지금도 일상을 이어가는 곳입니다.

그래서 이 도시는 박물관처럼 멀리서 바라보는 것보다 직접 골목을 걷고 그 안에 머물러 볼 때 비로소 진짜 매력이 드러납니다.


바다와 도시가 만나는 리바 거리

스플리트의 첫인상은 대부분 리바 거리(Riva Promenade)​에서 시작됩니다.

아드리아해를 따라 길게 이어진 산책로에는 야자수가 늘어서 있고, 카페의 야외 테이블에는 커피를 마시며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한쪽에는 항구를 오가는 배들이 보이고, 다른 한쪽에는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의 오래된 성벽이 자리합니다.

수천 년의 역사와 오늘의 여유로운 일상이 한 장면 안에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곳입니다.

낮에는 햇빛을 받아 바다가 반짝이고, 해 질 무렵에는 하늘과 건물들이 따뜻한 색으로 물듭니다.

특별한 목적지 없이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스플리트다운 시간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골목에 걸린 빨래가 들려주는 이야기

궁전 안쪽으로 들어서면 길은 점점 좁아지고, 미로처럼 이어진 석조 골목이 여행자를 맞이합니다.

오랜 세월 사람들의 발길에 닳아 반질거리는 돌바닥과 높은 건물 사이로 햇살이 스며듭니다.

그리고 고개를 들면 골목 위로 주민들이 널어놓은 빨래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고대 로마의 궁전 안에 빨래가 걸려 있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모습이 스플리트의 가장 특별한 매력입니다.

이곳은 과거에 멈춘 유적지가 아니라, 역사의 공간 안에서 오늘의 생활이 계속되는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작은 창문, 문 앞의 화분, 골목 모퉁이의 식당과 카페까지.

스플리트에서는 평범한 일상의 풍경조차 오래된 돌벽과 어우러져 특별한 장면이 됩니다.




황제의 영묘에서 성당으로

궁전의 중심에 들어서면 웅장한 석조 기둥으로 둘러싸인 페리스틸 광장(Peristyle Square)​이 나타납니다.

그 옆에는 성 도미니우스 대성당(Cathedral of Saint Domnius)​이 자리합니다.

이 건물은 본래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영묘로 세워졌지만, 이후 성당으로 사용되면서 전혀 다른 역사를 품게 되었습니다.

광장에 서서 오래된 기둥과 성당의 종탑을 올려다보면, 여러 시대가 한 공간에 겹쳐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됩니다.

관광객들이 계단에 앉아 쉬고, 주민들이 광장을 지나가며, 음악가들이 연주를 시작합니다.

황제를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 오늘날에는 누구나 머물 수 있는 도시의 거실이 된 셈입니다.




궁전 안에서 울려 퍼지는 달마티아의 노래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의 지하 공간이나 둥근 전실을 지날 때면 뜻밖의 음악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여러 명의 남성이 악기 없이 목소리만으로 부르는 크로아티아 달마티아 지방의 전통 아카펠라, 클라파(Klapa)​입니다.

두꺼운 돌벽과 둥근 천장이 목소리를 받아들이면 노래는 더욱 깊고 풍성하게 울려 퍼집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그 노래를 듣고 있으면, 오래된 궁전이 단순한 돌의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의 목소리와 기억을 품은 살아 있는 장소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행 중 우연히 만나는 짧은 노래 한 곡이 유명한 건축물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기도 합니다.




행운을 전하는 그레고리우스 닌 동상

구시가지 북쪽 골든 게이트 근처에는 커다란 인물상이 서 있습니다.

크로아티아어로 그르구르 닌스키(Grgur Ninski)​라고 불리는 그레고리우스 닌 주교의 동상입니다.

그는 중세 크로아티아에서 예배에 자국어를 사용하는 것을 지지한 인물로 기억됩니다.

동상의 커다란 발가락은 수많은 사람이 만져 유난히 반짝입니다.

발가락을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지거나 다시 스플리트를 찾게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여행자들은 미소를 지으며 차례를 기다리고, 저마다 작은 소원을 마음속에 담아 발가락을 만집니다.

역사적인 인물의 동상이 오늘날에는 여행자들의 추억과 소망이 모이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과거와 현재 사이를 걷는 도시

스플리트는 웅장한 궁전 하나만 보고 떠나는 도시가 아닙니다.

리바 거리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빨래가 걸린 골목을 걷고, 광장에서 아카펠라를 들으며, 작은 식당에서 달마티아의 음식을 맛보는 시간까지 모두가 스플리트 여행입니다.

이 도시에서는 고대 로마와 현대의 일상이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래된 궁전의 벽은 사람들의 집이 되고, 황제의 광장은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며, 골목마다 오늘의 삶이 계속됩니다.

그래서 스플리트는 역사를 관람하는 도시가 아니라, 역사 속을 걸으며 현재를 만나는 도시입니다.



여행 정보

스플리트 구시가지와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일대는 대부분 도보로 둘러볼 수 있습니다.

석조 골목의 바닥이 매끄럽고 미끄러울 수 있으므로 편안하고 밑창이 안정적인 신발을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리바 거리와 궁전 내부는 시간대에 따라 분위기가 크게 달라지므로, 낮의 활기와 해 질 무렵의 풍경을 모두 경험해 보기를 권합니다.



미지로투어는 직접 보고, 직접 걷고, 직접 경험한 유럽의 이야기를 여행노트를 통해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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